노무현과 얼굴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던 해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그 무렵따라 세상은 자주, 크게 요동쳤다. 도시 한 가운데가 붉은 옷을 입은 이들, 혹은 촛불을 든 이들로 가득 채워지고, 거기서 본 것은 난생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었다. 서울 변두리 동네 한 구석에서 안간힘을 다해 넘겨다보는 세상이란 아직 그렇게 낯선 얼굴들일 뿐이었지만, 뭔가 세상이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한참 어리던 시절 뉴스 화면에서 국회의사당 속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아직은 내가 덜 자랐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우리에게 시간이 덜 주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지켜봐야 하지만 우리 모두가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던, 그런 막연함이 조금씩 실제가 되어간다는 생각. 몇 개월쯤인가 모자라 직접 투표는 하지 못했음에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조금 먼저 투표한 이들과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다시 변했다. 나는 좀더 나이를 먹었고, 사람들의 더 많은 모습들을 보았고, 몇 번인가의 선거를 했다. 세상이란 그저 넘겨다보고 상상하는 것에서 좀더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되었음에도, 그 때의 막연함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앞으로는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뉴스 화면들은 계속되고, 내가 고작 더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란 거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혹은 하지 않는다는 것뿐인 듯하다. 그리고 이천구년 오월의 어느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음을 선택했다. 

 내가 조금이나마 아는 바로는, 그는 어떤 이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완벽한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또 다른 이들이 믿듯이 천벌받아 마땅한 죄인도 아니었다. 각자의 믿음이 어찌 되었건 그는 그가 버려서는 안 될 가장 큰 것을 저버린 듯 보인다. 그럼에도 모든 사실을 떠나 그 죽음 앞에서 적어도 안타까운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자신이 택했던 태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음을, 스스로 다른 이들이 믿는 자신을 저버렸음을 깨달았을 때, 최소한은 부끄러워할 사람의 얼굴. 아예 그런 것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사람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것조차 상관없다는 듯한 누군가들의 얼굴이 아니라.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그 광장을 채웠던 사람들의 생각들도, 그때 내가 품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믿음이었으리라. 그래도 우리는, 세상은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어쩌면, 사람 사는 세상이란 점점 더 잘못되어만 가리라는 불안감뿐일까. 시청에서 보았던 얼굴들을 생각하고, 생전 노무현 대통령이 보였던, 혹은 후에 봉하마을 촌부가 보여주었던 얼굴들을 생각한다. 저 멀리 세상을 넘겨다보던 내 얼굴은 이 세상 속에서 어찌 변해갈지 생각해본다. 부디 그 얼굴들의 끝이, 죽음이 아니었으면 할 뿐이다.


2009.05
by wideawake

by wideawake | 2009/05/23 23:34 | people | 트랙백 | 덧글(0)
故 릭 라이트 goodbye, my own pink floyd

 프리스트 형님들을 영접할 날은 다가오고 '샤인 어 라이트'는 어느덧 막상영이 코앞이다. 거룩하사 두 밴드의 존함이 담긴 포스팅을 주섬기다가도 벅찬 마음 당할 길 없어 중도에 손을 접기가 몇 차례, 그러던 차에 안타까운 부고가 또 한 차례 날아들었다. 언제나처럼, 그저 믿고 싶지 않아지는 소식.  
 믿을 수 없이 행복하기만 한 날에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닥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또 힘껏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어느날엔가 오고 말 떠나감에도 조금은 더 익숙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다시 한번 핑크 플로이드에 관해서 써야 한다.



more...
by wideawake | 2008/09/16 22:44 | musica | 트랙백 | 덧글(0)
故 히스 레저 as the joker
 그리고 보면 벌써 올해 초였던가, 놀란의 새 배트맨에 대한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때에, 난데없는 부고장이 턱 날아들었다. 그가 새로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들이 조금씩 비어져나올 무렵이었기에 더욱 당혹스럽기만 했던 소식. 매일 방안에 틀어박혀 조커의 일기를 썼을 정도로 역에 몰입했다고 했던가, 그야말로 킬링 조크, 지금 생각해봐도 거짓말인 것만 같은 히스 레저의 죽음이었다.

 아직도 몇 페이지쯤 전에 그가 죽었을 때 어떻게든 써보려다 끝내 끝내지 못한 글이 남아 있다. 워낙에 황망한 소식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만, 당시 이 배우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마침표를 찍어내기가 곤란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사 윌리엄'의 금발 미남스타 정도의 시작에서 '브로크백 마운틴' 속 과묵한 카우보이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영화들 속에서 보일듯 말듯 꾸준히 영역을 넓혀오던 과묵한 연기자. 정말 아까운 명배우가 갔다. 라기보담 이제 막 뭔가 해보이기 시작할 땐데...쯤의 망연자실이었으리라. 그때까지의 히스 레저에 대한 인상이라면.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공개되고 과연 조커에 대한 극찬들이 쏟아질 때에도, 잔뜩 기대하는 한편으로 내심 마냥 환호를 보내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기에는 뭐랄까, 뭔가 머쓱한 데가 있었다. '아임 낫 데어' 속 히스 레저, 육분의 일의 밥 딜런을 볼 때와 같은 기시감. 나는 그를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할 만큼 그를 알려고 했던 적이 있던가?



why so serious??
by wideawake | 2008/08/06 23:58 | peopl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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