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언젠가부터 꽤나, 퍽, 무척, 영 글빨이 안 선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름의 글로 소화해내는 일을 시작한 이래 주기마다 몇 번씩 반복했던 땡깡이다만 이건 정말 전투력 상실이다. 막무가내 단상보단 철저히 정제된 글을 써내고 싶은 욕심만 있고 성실함은 따라오질 못했다. 그 어떤 영화 보기도 결국 몇마디 단상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건 나태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열정이 식어가는 과정이었다. 영화들은 너무도 가볍게 입에 올려지고 쉽게 사라져간다. 몇 번인가 이만치 감상쯤은, 이 정도의 정체쯤은 써볼수도 있겠다 싶어 끄적여보기도 했지만 결국 문장들이 이어지지 않아서, 글 흘러가는 방향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접었다가 시간이 흐르고 흐지부지. 애초에 이걸 붙잡고 뭘 끄적여내기보단 그냥 즐기는 일이 더 맞는 놈이었단 생각도 들고. 거기에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분에 넘치게 좋은 영화들은 많았으나, 너무도 게을렀고, 눈만 높았다. 잡지 못한 펜은 벼려지기는커녕 점점 녹슬 뿐. 생각해보면 처음엔, 그저 알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내 능력으로는 아직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수평선의 해변에서 그래도 좀 이게 뭔지는 알아봐야겠다는 심정.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시작한 일이 조금 궤도에 오를 법 하니, 슬슬 영화에 치이고 밀리는 일들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영화를 보는가. 라는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너는 감히 영화를 좀 알았다고 말하는가? 더이상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고? 그토록 매혹당했던, 여기에 내 무언가를 걸어도 문제없겠다고 믿었던 영화가 이 정도로 끝이 보이던가? ...쓰다 보니 좀 오버가 보이는데, 여튼 이런저런 류의 생각들과 써지지 않는 글들의 틈에서 허우적거리다 안 써질 땐 굳이 쓸려고 발작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란 결론을 얻고 맘 탁 놓은 채 그저 영화 보기만 계속해왔더랬단 얘기다. 자 그리하여 그 감상의 구도 끝에 드디어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가 열렸는가...하면 뭐 그건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손 탁 놓고 있다가는 이도저도 안 된단 생각은 들더라. 제아무리 좋은 영환들 보는 이가 크레딧 오르고 나서 아, 참 좋은 영화였어. 하고 생각 탁 놓아버리면 어쩌겠는가. 그래서는 '시민 케인' 이나 이무기 기어다니는 영화나 별다를 게 없지 않나. 이건 이래서 좀 아닌데 이건 좀 괜찮지 않나 하고 떠들어야 뭐가 얘기가 되지. 항상 사모해 마지않고 본받고 싶던, 영화를 글로 풀어내는 이들의 글에는 종횡무진하는 문체도 아니오 마음아리는 감성도 아닌, 결국엔 통찰력이 있었다. 뭐라 말하기는 힘든데 그 정체를 싸잡아서 어떻게 한 마디로 요약하고픈 뭔가가 있는 영화들을, 단숨에 꿰뚫는 통찰의 힘. 그건 가끔 기분 내킬때나 끄적이는 얄량한 감상으론 만들어낼 수 없는 거다. 흥분이 사그라들었던들 지금으선 그걸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꾸준함이 필요하다. 아직 저기 펼쳐진 수평선에 알아야만 할 것들이 있다. 꾸준함이 필요하다. 1. ...길게 돌아와서, 그래서 단상을 쓰기 시작했단 얘기. 정제된 글쓰기를 꾸준함으로 꿰뚫기엔 아무래도 내공이 후달리니, 당장 적응 안되더라도 맞는 방식이 뭔지 찾아봐야겠지. 꽤 오래된 소식이긴 하지만 이번 베를린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shine a light' 얘기를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마틴 스콜세지와 롤링 스톤즈가 함께한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은 논픽션으로는 베를린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개막작 선정되어 성황리에 시사를 마쳤다 하고, 일찌감치 cj가 판권을 산 덕분에 롤링스톤즈 내한공연만큼이나 가능성 희박할 줄만 알았던 이 작품의 극장 상영을 기대해볼 수 있다 는 이야기. 씨네 21 에서도 아마 지면상으로 올라온 적은 없고 온라인에 스쳐간 단신인지라. 읽고 나서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한 것까진 좋았는데 이 심정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지. 이 블로그 처음 열 적에 사모해 마지않는 두...아니 다섯 양반의 역사적 접선 소식만으로 개흥분해서 롤링스톤즈 라이브를 수십번씩 리플레이하며 취한 듯이 써제끼던 글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 여튼 본인으로서는 이런 뉴스야 그저 절대 저항할 수 없는 족쇄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 같은 것이라서... 그나저나 스콜세지 영감님은 환갑 넘으신 연세에 오지랖도 넖으셔서 김기영 감독님 작품 복원에까지 힘쓰고 계신데, 고작 다섯해 남짓 영화를 파기 시작한 미욱한 후학은 이렇게 빌빌대고 있으니 원. ![]() ![]() 3. 이래저래 우여곡절 많았던 '데어 윌 비 블러드' 개봉이 여튼 드디어 이번주다. 이전에 언급했던 cgv의 작태는 지금 돌이켜도 도대체가 화도 안날 지경이다만, 어쨌든간에 어쩌겠는가. 제작 소식 이후 들려오는 소식 하나하나가 심히 녹록치 않던, 그렇게 기다린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이, 드디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영화에 막 빠져들던 때, 한편에 그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한 과거의 유산들이 자리했다면, 또 한편에는 아직 그 정체를 다 알아차리기엔 세월이 덜 쌓인, 진행중의 걸작들이 있었다. 아직 고전의 이름을 얻기엔 이르지만, 그제까지 존재해왔던 영화의 모든 것을 다 집어삼켜 버릴 듯한 힘으로 꿈틀대는, 과거와 미래 사이 지금 어딘가에 위치한 영화들. 거기에 '바톤 핑크'가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엔 '매그놀리아'가 있었다. 여태까지의 무엇으로 재기에는 불충분하고 앞으로 어디까지 갈 것인지도 모를 그들이, 어느샌가 나 같은 범인으로선 미처 상상치도 못한 곳에 성큼 가 닿아있곤 한다. 그 어느 위대한 고전인들 상상하지 못할 짜릿함. 혹자는 그들의 영화로 미국 영화의 변화를, 새로운 세기를 읽는다지만, 역시 나같은 범인은 그런 깨우침까지는 아직 와 닿질 않는가보다. 다만 이 정체불명의 전율을 더없는 설레임으로, 얼떨떨한 심정으로 맞이할 뿐. ![]() 이건 갈수록 글 이을 맘이 사라진다. 이번호 넥스트 플러스와 cgv 사이트에 공개된 예매 정보로 보건대 cgv쪽에 잡힌 개봉관 은 강변, 상암, 압구정 딱 세 곳인데, 이놈의 무비꼴라쥰지 뭔지 하는 데 배정된 상영관 규모라는 게 고작 상암 95, 강변 77, 압구정은 85석 남짓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제80회아카데미촬영상에빛나는로버트엘스위츠의검게불타오르는유전을배경 으로역시80회아카데미남우주연상에빛나는욕망으로얼룩진주인공을연기하는다니엘데이루이스가활보하는묵시록적인풍경을 -100석 채 안되는 어디 시골 마을회관 시사실만한 상영관에 올망졸망 모여앉아서 볼거면 보고 말거면 말라는 얘긴데, 에라이,정말 이러기냐!! 2008.03
by wideawake
|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2009년 05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최근 등록된 덧글
퍼가요~
by 모르모트 at 03/01 퍼감니다~ by 모르모트 at 02/21 마지막장면이 여운을 남.. by sdfa at 10/09 흑. 다크나이트 봐야하.. by 누벨바그 at 08/08 의도한 건 아닌데- 유진.. by 안냥 at 08/08 paper cup/ 23일날 시네.. by wideawake at 08/07 미안한 말이지만 불안불.. by paper cup at 05/02 음반수집가 님/ 음악은 좋.. by wideawake at 04/23 paper cup/ 왜 오는 .. by wideawake at 04/23 연리목 누님/ 아니 뭐 저.. by wideawake at 04/23 최근 등록된 트랙백
[방축(放·逐, 2006)]
by SabBatH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by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망상대리인 (콘 사토시) by 한페이지리뷰 스코세지...축하해요 ^^ by GoodNight 목록 : 2006년 영화 Best 10 by SabBatH 메뉴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