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몇 페이지쯤 전에 그가 죽었을 때 어떻게든 써보려다 끝내 끝내지 못한 글이 남아 있다. 워낙에 황망한 소식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만, 당시 이 배우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마침표를 찍어내기가 곤란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사 윌리엄'의 금발 미남스타 정도의 시작에서 '브로크백 마운틴' 속 과묵한 카우보이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영화들 속에서 보일듯 말듯 꾸준히 영역을 넓혀오던 과묵한 연기자. 정말 아까운 명배우가 갔다. 라기보담 이제 막 뭔가 해보이기 시작할 땐데...쯤의 망연자실이었으리라. 그때까지의 히스 레저에 대한 인상이라면.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공개되고 과연 조커에 대한 극찬들이 쏟아질 때에도, 잔뜩 기대하는 한편으로 내심 마냥 환호를 보내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기에는 뭐랄까, 뭔가 머쓱한 데가 있었다. '아임 낫 데어' 속 히스 레저, 육분의 일의 밥 딜런을 볼 때와 같은 기시감. 나는 그를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할 만큼 그를 알려고 했던 적이 있던가? 그리고. '다크 나이트'를 보았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싱잉 인 더 레인' 에 맞춰 춤추던 알렉스를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혹은 아무 마음의 준비 없이 철창 속의 렉터 박사와 대면해야 했던 당시 관객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가 어떻게까지 플롯이니 개연성이니 하는 것들 위를 훌쩍 뛰어넘어서 극 전체를 쥐었다폈다할 수 있는지. 작은 입꼬리 올리기 하나까지도 다 계산된 것만 같은-순전히 그 인물이 되어 몸에 익혔기에 가능했을- 치밀한 제스처들 위에 엄청난 양의 철학적인 대사들이 쏟아진다. 한 명의 배우가 치열하게 파고든 끝에 죽음과 맞바꾼 캐릭터의 극한이 여기에 있다. 잭 니콜슨의 조커가 코믹스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냈다면, 히스 레저의 조커는 캐릭터의 면면은 그대로 옮겨오되 좀더 현실 가까이까지 손을 뻗어온다. 실제로 우리 옆에 얼굴에 분칠하고 다니는 미친놈이 있다면 저럴 것만 같은 느낌. 전자가 환상적이어서 매력적이라면 후자는 꼭 진짜 같아서 기분 더럽다.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불안해지는, 저 미친놈이 다음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도저히 알 수 없게 하는, 완전한 아나키즘, 혼돈 그 자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장악해버린 다음에야, 거꾸로 매달린 조커의 모습을 바로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얼굴은 가면 너머의 또 다른 자아가 된다. 정말이지 이렇게 연기해놓고 난 다음에야 그런 주제를 이야기할 힘이 받쳐주는 법이다. 2008.08 by widea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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