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uprises : 레스페스트 라디오헤드 특별전

| 1998 | 그랜트 기 GRANT GEE


 레스페스트를 다녀왔다. 미래의 영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현주소 확인과도 같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영상제.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찾아간 일이 없건만 올해의 레스페스트만은 개막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이유라 하면 오로지, 오로지 라디오헤드 특별전.

 본인 또한 어쩔 수 없이 MTV의 입김 아래 성장한 세대인고로, 초등학생 무렵부터 이미 m-net이니 kmtv니 하는 국내 음악 채널들을 마구 섭렵하며 음악의 흔적들을 따라갔더랬다. 그중에서도 타임 투 락이란-아마 진작에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만-한시간 내내 락 계열의 뮤비들만을 줄창 틀어주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마 거기서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라디오헤드의 뮤직 비디오들, 그 한없는 몽환으로 침잠하는 음악들과 거기에 마력과도 같이 공명하던 영상을. 흑백 세상 속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 street sprit, 어느새 눈을 돌려보면 모두가 길바닥에 누워있는 전염병 just, 한없이 계속되는 길 위 한 남자를 절망처럼 쫓아가는 두 줄기 라이트 karma police, 그 음울하게 빛나던 영상들이 그토록 강렬하게 기억 속 어딘가 박혀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음악들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아마도, 나는 비로소 뮤직 비디오란 예술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쳤던 것 같다. 영상과 조우한 음악이란 얼마나 더 강렬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기억들과의 조우였다.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기억의 파편들을 그러모으는 순간들은 더없이 반가웠으며, 그간 그다지 정을 두지 않았던-그리고 그 영상들이 펼쳐지는 순간 후회를 금치 못한-KID A 이후의 작업들도 더없이 라디오헤드다웠다. 특히 저 유명한 미쉘 공드리의 knives out이 풀어내는 수공업 상상력은 과연 듣던 대로. 하지만, 하지만 역시 오늘의 압권은 98년의 no suprises와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으리라.


 암전. 질식하리만치 달콤한 꿈결 속의 알람이 서서히 울리고. 와이드 스크린 가득 펼쳐진 유리관 속 한 사내의 얼굴. 뭔가 웅얼대는 듯 노래를 시작하는 사내. 웅웅대는 울림과 함께 앰프가 달려나간다. 유리관 속 물은 서서히 차오르고, 남자는 꿈 속에 파묻혀가며 담담히 읊조린다.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지 않길, 이젠 놀라지 않기를.

 그리고, 불현듯 꿈은 현실로 돌아오고, 숨을 몰아쉰 남자는 여전히 노래를 계속한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은 암전. 

 무슨 말을 할까? 와이드 스크린 위 이 한컷짜리 악몽의 짜릿함은, 8년전 처음 만났을때의 그것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이 꿈을 기억하는 이라면, 라디오헤드를 좋아한다면, 아무쪼록 레스페스트를 방문하길 권한다. 금요일의 심야 상영까지 해서 두 번의 상영이 남았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경험일 것이다.

 http://www.resfest.co.kr/resfest_2006/ 

 

              2006. 12. 07
by wideawake

 

by wideawake | 2006/12/06 22:12 | musica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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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12/07 06:31
이리저리 말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해야겠군요. "이래서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니까!" ㅠㅠ 가고 싶어요.

참, 블로그 링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영거 at 2006/12/07 14:51
라디오헤드..

정말 좋아하는 밴드..ㅎ

지방에 살아서 이거 보러가고 싶어도 ㅠㅠ
Commented by Cynic at 2006/12/07 21:45
레스페스트 가고 싶긴 한데, 요즘 논술이다 뭐다 해서 신촌까지 갈 여유가 안나는군요. 그래도 시간내서 꼭 가봐야 할 듯 합니다. 프로그램 하나라도 봐야죠 휴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6/12/13 01:19
파인로/서울 사람으로서, 가끔 스스로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잊어버리곤 합니다. 극장에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영화들이 이 영화 지방엔 개봉 왜 안해주냐 라는 항의들을 볼 때마다 그런 걸 되새기곤 하지요. 그리고 보면 어제 김형구 촬영감독님도 잘 안나온 프린트들은 지방으로 보낸다(...)란 말씀을 하시더군요 -_-; 그래도 부산 시네마테끄니 하는 곳들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이 할 때는 질투가 치솟는걸요. 아마 거주하시는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여기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겝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6/12/13 01:21
영거/...이쯤 되면 제가 다 죄송합니다 그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6/12/13 01:22
Cynic/논술이라, 그게 언제적 얘기였는지 전 가물가물하군요;
지금 시기를 후회없이 보내면 나중에 레스페스트같은건 수백번이라도 볼 수 있게 될겝니다. 힘내시길!
Commented by oIHLo at 2006/12/13 01:34
시험 때문에 못 갔습니다, 제길
뭐... 안 그래도 팬인지라 다들 보기는 한 뮤직비디오입니다만... Radiohead.tv 것들을 못 봤군요 -_-
개인적으로는 Street Spirit (Fade Out)과 Pyramid Song을 좋아해요.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6/12/13 01:58
oIHLo/ 다들 보기는 하셨겠지만서도, 노 서프라이즈를 스크린에서 보면 감상이 달라지실겝니다(으흐흐)
KID A이후의 행보에 좀 실망해서 라디오헤드를 좀 소홀히 했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또 다르더군요. 암네시악 한정판이 보일 때 사놓을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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