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올해의 영화 10편


 연말이라 하면 역시 이것, 한해 동안의 후련한 정산인 동시에 골치 아프고 마음 슬픈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골라내기, 바로 '올해의 영화'를 꼽을 날이 다가오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동기게시판에 올려진 다양한 버전의 올해 최고의 영화들을 보며 나도 한번...이란 생각을 했건만, 돌이켜 보자니 내가 한해동안 무슨 영화를 봤었는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물론 종로에서 성난 황소를, 부산에서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를, 광화문에서 안개 속의 풍경 등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고전들을 필름으로 만난 일들은 생생하지만, 정작 그해 등장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이 작품만큼은 영화사에 이 한해를 대표하여 쓰여질만하다-란 영화를 꼽고 싶건만, 분명 그런 영화들과 만났음에도 한 해 동안의 기억 속에서 그 기억들은 가물가물했다. 올해의 영화를 꼽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고전은 세월의 힘과 높은 명성을 등에 업고 뒤늦게 그와 만난 나를 더욱 압박하지만, 이제 막 등장한 걸작 후보생들이란 그렇지 못하다. 아직 영화에 대한 충분한 담론이 나누어지지 못한데다 앞으로 영화가 미칠 영향과 더불어 재평가될 가능성도 검증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걸작을 놓고 누가 뭐래도 난 이영화가 좋았느니 어쨌느니 목소리 높이는 건, 아무래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여튼, 올 한해 동안 300편이 약간 넘는 영화들을 봤다. 그런대로 어떻게 하루에 한편 정도는 선방한 셈이다. 그 수많은 순간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적시나 이름만 들어도 장난 아닌 고전들과 만나는 순간이었다만- 맨하탄의 그 아름다운 흑백 영상을, 현기증의 그 뿌옇게 빛나는 화면을, 와일드 번치의 그 역동하는 씨네마스코프를, 캐리의 그 충격적인 분할화면을 어찌 잊으랴!!-눈물을 머금고 그중에서도 올해 공개되었던 영화들을, 또 그중에서도 한가지 기준 하에 열편을 꼽아보았다. 기준이 뭐냐고? 그건 나를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한 영화들'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이안

 올해 초, 만나는 순간 이미 올해의 걸작으로 점찍어둔 최초의 작품.

 솔직히 나는 이안이란 감독에 대해 잘 몰랐었다. 아카데미가 격찬했던 와호장룡도 여태까지의 대륙 무협영화에 비해 별다른 포스를 느끼지 못했었고, 아이스 스톰이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같은 할리우드 진출 이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은 아직 보질 못했다. 거기에 사실, 재수가 끝날 무렵 친구 한명과 재밌는거 보자고 빌렸던 헐크가 가져왔던 쓰나미 덕에 좀 싫어했던 편이라 함이 맞겠다. 다른 동향 감독들처럼 헐리우드 진출했다가 죽쑨듯한 인상의 감독. 그러나 올해, 이 한편으로 그는 나의 그에 대한 모든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영화는 자연 속, 두 카우보이 청년 사이의 사랑이 맺어지고 이어지다 어느새 도시 속에서 헤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고 후회하는 과정을 담담히 바라본다. 굳이 여기에 게이니 하는 단어를 끌어다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촬영감독 로드리고 푸리에토가 말 그대로 필름 위에 '그려내버린' 풍경화 속에서 그들은 남자이기 이전에 그저 대자연 속의 생물일 뿐이다. 물론 본인은 뿌리깊이 이성을 좋아하는 데 익숙한 인간인지라 영화 속 동성애의 묘사에 잠깐 거부감을 느끼긴 했다만, 그것도 영화 흐름 속에서 그저 두 사람이 교감을 나누는 장면처럼 받아들여졌다면 말 다했지 뭐. 다시 말하지만 이건 굳이 동성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두 명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랑과 단절과 세월과 회한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안이란 감독은 그 인생의 과정을, 특히 회한이란 감정을 꼬옥 쥐고 가만히 흔들어댄다. 영화의 마지막 그 셔츠 장면, 아, 거기서 마음 찡하지 않을 재간 있는 이가 어디 있으랴.

 느지막한 시간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크레딧에 흐르는 두 곡 모두가 끝난 다음에야 불이 켜졌고, 자리에서 일어나 광화문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거기까진 그냥 그랬나 싶었는데 돌아오는 버스 안 마음 한구석이 지독하게도 쓸쓸해 죽겠는 거다. 창밖으로 흔들리는 밤거리를 보면서 앞좌석을 부여잡고 마음을 달래느라 혼났다. 올 한해동안 이렇게 가슴을 쓸어대는 영화는 다시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앞으로 이안 영화는 무조건 찾아 볼 거란 것.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데이빗 크로넨버그


 아, 이것은 이 땅의 슬픔이다. 어찌하여 이런 무지막지한 걸작이 우리 나라에 개봉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이것은 그만큼이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걸작이다. 내게 가져다 준 충격의 강도로만 따지자면 여기 언급된 열 편 가운데 단연 이 영화가 최고일 것이다. 이것은 데이빗 크로넨버그란 거장 중 거장이, 작살나는 포스 그 자체로 찍어낸 영화이다.

 작년 칸에서였나? 크로넨버그의 신작이 공개되었다더라, 죽인다더라 란 소문을 듣자마자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며 기다렸다. 그리고 국내 개봉에 대한 아무 소식 없음에 지쳐버리고는, 크로넨버그 형님께 백배 사죄하며 어둠의 경로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주변사람들에게 떠들어댔다. 폭력의 역사 안 보면 후회한다.

 크로넨버그는 항상 인간이란 것들의 본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해왔다. 그는 그것을 인간과 파리와 기계가 합체해버리는 생물체로, 뱃속으로 혹은 성기 속으로 빨려드는 비디오테잎으로, 여성기의 모습을 하고 마약을 들이마시는 타자기의 모습으로 그려왔다. 그리고 그는 그 극단과 마주해보겠단 기세로 매섭게 달려가는가  싶더니, 크래쉬쯤에서 그만 정말로 충돌해버렸다. 쾅!! 그리고 그는 스파이더에서 어떤 새로운 경지로 눈을 돌렸다. 피와 살이 녹아붙는 살풍경 속의 모습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그리고는 어느샌가 이 걸작을 가지고 돌아왔다. 어 히스토리 오브 바이올런스. 폭력의 역사. 어디 살떨려서 이런 제목 붙일 수나 있겠는가. 동네서 굴러다니는 양아치들은 감히 이런 제목 못 붙인다. 크로넨버그 형님쯤 되는 내공이 있어야 영화 한편 떡 찍어 놓고 이런 제목을 척하니 붙일 수 있다.

 포스가 있는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다. 과거를 숨기고 살던 한 남자가 자신을 추적해온 과거와 맞닥뜨리고는, 일그러져만 가는 가정의 모습에 고뇌한다. 어느새 아들은 아버지의 총을 대물림하고, 어쩔 수 없이 그는 과거로 돌아가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누아르와 웨스턴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만 추려왔달까. 하지만 그 간명하면서도 한숨에 뼈대를 짚어내는 연출력이라니. 러닝타임도 크로넨버그답게 딱 한시간 반이다. 섬뜩한 롱테이크로 시작한 영화는 당연한 듯 소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컷은 어느새 비명을 지르는 주인공의 딸로 이어붙는다. 일견 단순해빠진 액션 위로 뼈를 바수고 살을 찢어내는 최소한의 특수효과와 사운드가 더해질 때, 그것은 정말로 등골을 깊숙이 파고드는 폭력이 된다. 평생 인간의 혈육을 그려낸 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포스. 그리고 여전히도 정곡을 짚어내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통찰력. 남편의 과거에 진저리치던 아내가 어느새 그와 계단에서 엉겨붙을 때, 가정에 돌아와 가족과 식탁에 앉은 가장이 젖어든 눈을 들며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 그 무시무시한 포스를 어찌 다 말로 하랴. 감히 말하건대 크로넨버그는 인간을 그려내는 어떤 경지에 다다랐다. 나는 이 영화를, 언젠가는 꼭 극장에서 맞닥뜨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 영화는 그만큼 강렬한 포스를 지니고 있다.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가렛 번' masters of horror 'cigarette burns', 존 카펜터

 카펜터의 완벽한 재림. 2006년에 이런 걸 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마스터즈 오브 호러란 제목을 달고 찾아온 시리즈의 기대만큼이나 이 영화의 충격은 큰 것이었다. 이 영화를 본 새벽, 치를 떨면서 멍하니 카펜터 아직 죽지 않았군...이라 읊조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어느 정도 카펜터의 전작, 매드니스의 재탕이긴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금단의 책을, 혹은 영화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란 소재는 얼마나 기본적인 것이면서 매력적인가. 판도라가 열어서는 안될 상자를 열었을 때 이미 우리는 우리에게 금지된 것 때문에 소멸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카펜터는 이미 자신이 한번 걸작을 일구어냈던 소재로 또 한번의 걸작을 만들어내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담뱃불 자국이 주인공의 환상을 넘어 우리가 보는 영상 위에 실제로 떠오를 때, 우리는 그가 여전히 환상 속 공포를 현실과 맞닥뜨리게 하는 데 둘도 없는 선수란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띄엄띄엄 등장하는 감질나는 플래시백과 말라붙어버린 손과 같이 은근한 묘사를 깔아두다가 한번에 폭발시키는 기법들은 또 어떤가. 이런 기법 또한 언뜻 기초적인 것 같으면서도 더없이 효과적이다. 그는 영화의 가장 원초적인 장치들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이 작품을 올해의 영화로 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슬슬 몰아가다 막판에 터뜨려버리는 그 특유의 극단적인 상상력 덕인데, 사실 호러 감독으로서 이게 한계에 닿으면 생명 끝났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카펜터는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로, 2006년 호러씬 최고의 명장면으로 증명했다. 그 얼큰하기 짝이 없는 곱창 영사라니. 널리고 널린 호러 감독들이 백날 대가리 깨고 팔다리 절단해봐야 가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여기 있다. 인간의 가장 파헤쳐지고 싶지 않은 세계를 영사기 위로 돌려버리는, 카펜터의 상상력. 비록 최근 시즌 2의 말도 안되는 부진이 아쉽긴 하지만, 카펜터 아직 죽지 않았다!!

 마이애미 바이스 miami vice, 마이클 만

 올 한해는 거장의 신작들 소식들만으로도 떨리는 나날들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늦게 사랑해버린 거장들의 최신작들을, 올해에야 비로소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를, 로버트 알트만의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아직 만나진 못했다만)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 달리아를 애타게 기다렸고, 그들의 새로운 세계를 극장에서 마주했다. 그것만으로도 올 한해는 내게 가치가 충분했다 하리라. 그리고 거기에, 마이클 만이 있었다.

 마이클 만,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한 화면에 등장시켜버린 이 감독을, 도심 속 수컷들의 세계를 그려내는데 따라올 자가 없는 이 작가를 난 그 어떤 감독보다도 좋아해왔다. 그리고 콜린 파렐과 제이미 폭스의 푸른 톤으로 박혀진 티저 이미지를 보는 순간, 난 이번에도 이 감독의 세계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해버렸다. 그리고 마이애미 바이스는 올 한해 최고의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랫동안 TV에서 잔뼈를 키워온 이 (동년배에 비해서) 늦깎이 감독은, 여전히도 자신의 세계를 탈피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고의 동반자였던 단테 스피노티를 떠나보내고 전작 콜래트럴에서 손잡은 디온 비브, 그의 HD카메라 위에서 마이클 만의 세계는 또 한번의 진화를 이루었다. 이 영화를 보던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래도 영화란 필름으로 찍혀져야 제맛이지 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잡아낸 밤의 도심 풍경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은 어느샌가 싹 바뀌어 있었다. 매체란 것이 틀만 아무리 바뀌어봤자 소용이 없다. 누군가 그 틀에 걸맞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 전까지는. 마이클 만은 HD란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전공을 또다시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한밤의 빌딩 위 두 형사의 뒤편으로, 필름은 절대 잡아내지 못할 질감을 한 채 빛나는 밤하늘이라니. 최후의 거래를 앞두고 대치하는 갱 무리들에게 다가드는 씨네마스코프의 힘이라니. 이것이야말로 극장에서 보아야만 하는 영화다.

 언젠가 동기들과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대립한 적이 있다. 극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콜린 파렐이 왜 공리와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이 영화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명세의 형사를 떠올렸다. 왜 남순이 슬픈 눈과 사랑에 빠지는지 보여주지 못하던, 드라마가 아닌 이미지의 영화를 보여주겠다던 영화. 과연, 영화란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작년 내게 이명세가 보여주지 못한 지점을 올해 마이클 만은 보여주었다. 난 그 차이가 뭐냐고 말하라면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마이클 만의 신작에서, 이야기 없이도 말하는 이미지란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파프리카 パプリカ, 곤 사토시

 올해 부산은 (언제나 그렇듯) 술운은 많았다만 (이상하게도) 영화운이 없었다. 처음 상영작들이 발표됐을 때부터 작년과는 다르게 그닥 보고픈 영화도 없었고, 어쩌다 김지운 마스터클래스에 끼어 내려간 것까진 좋았다만 과연 그닥 건질 영화들이 없었다. 숙취도 안가셨겠다 그 어느때보다 마음 편하게 극장에서 자버리던 하루하루가 계속됐고, 그리고 이젠 지쳤어란 심정으로 상경을 결심한 날 마지막으로 고른 두 편의 애니메이션, 그 두 편이 올해의 부산을 술보다 영화의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파프리카와 시간을 건너온 소녀. 두 편 모두 최고의 작품이었다만, 역시 한 편을 꼽아야 한다면 파프리카의 충격을 꼽아야 하겠다.

 이 영화가 내게 준 최고의 수확이 있다면 곤 사토시란 이름을 일깨워 준 것이다. 퍼펙트 블루니 매드하우스니 하는 이름을 알고는 있었다만 어째 찾아보게 되지는 않았었다. 예전 스타일은 화려했다만 별로 재미없게 봤던 천년여우의 기억 때문일지도, 혹은 중고등학교 시절 미쳤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생긴 부작용 때문일지도. 하지만 부산에서 만난 그의 작품은 곤 사토시란 이름을 뇌리에 깊게 새겨놓았고, 귀경하자마자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의심할 바 없는 곤 사토시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이 놀라운 작품이 쉴새없이 담아내고 있는 철학들은 너무나 방대해서 읽어내려 노력하고 있자면 머리가 아파온다. 이영도 소설 속의 두억시니들을 연상케 하는, 폭주하는 네트 속 인간들이 읊어대는 선문답들처럼. 몇번인가 이 영화의 리뷰를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가물가물한 기억 속 그 모든 요소들을 다 찾아낼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광대한 네트 속 세계와 그보다 더 광대한 인간 정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가득하다. 이미 예전에 공각기동대가 말했던 것들 아니냐고? 곤 사토시의 작품을 한번 보면 그런 말 못할 거다. 원래 실사영화를 연출하고자 했다는 이 애니메이션 감독은, 셀 위의 세상에 '영화로만 할 수 있을 법한' 세계를 더해낸다. 현실과 환상과 영상과 전뇌와 만화와 영화와 회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아 말하고 있자니 내가 두억시니가 되는 느낌이다. 더이상 말로 설명해봤자 혼란스러울 뿐이고, 딱 한 장면만 말하겠다. 영화 속에서 아까 말한 세계들의 경계를 누비는 주인공은 어느 순간 뉴스 현장의 영상 속으로 들어가, 그 현장의 카메라 속에서 뛰쳐나온다!! 그게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영화를 공부하면서 카메라의 정치학이니 렌즈가 비춰내는 현실과의 관계니 하는 것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은, 이 감독의 세계 속에서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뒤로 넘어갈 거라 확신한다. 파프리카가, 곤 사토시의 세계가 전해준 것은 그런 종류의 충격이었다. 작품의 퀄리티를 볼 때 언제고 국내개봉을 해주지 않을까 믿고 있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길 권한다.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영화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탄생, 김태용

 올해의 한국 영화 단 한편을 꼽으라면 천만 관객을 모은 왕의 남자도, 칸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괴물도 아니다. 오로지 이 영화다.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 영화.

 이 영화를 보는 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다. 이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는 이상하게도 보러 가고 싶지 않았더랬다. 한국 영화의 컬트 중 컬트라는 김태용과 민규동의 여고괴담 2의 감성은 분명 괜찮은 것이긴 했지만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이 영화를 찾으니 아뿔싸, 이미 다 내려버린 후였다. 아트시네마에서 시네바캉스의 일환으로 준비했던 행사는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이 맞질 않았고, 벼르고 벼르다 부산에선 GV까지 예약해놓고도 전날 술을 쳐마시고 늦잠자는 바람에 보러가질 못했다. 이쯤 되면 누구나 될 대로 되라. 는 기분이 되기 마련이다. 후에 드디어 이 영화를 볼 때쯤에는 어디 얼마나 좋은 영환지 보자. 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한지 몇분 안되어 그 오기는 깨져버렸다.

 사실 이 영화의 주를 이루는 감성이란 건 조금 나와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마지막에 조금 억지스러운 감이 없잖게 제시되는-아버지가 부재하는-대안 가족의 탄생 광경은 주제를 몰고가느라 좀 오버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완전소중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어떻게 하면 배우에게서 이런 연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안타까움 그 자체 문소리도, 능청맞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엄태웅도, 어유 남사스러워라 고두심도, 남얘기같지 않은 공효진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봉태규도,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정유미도 이 작품 하나로 예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들의 연기의 영역을 보여준다. 올해, 아니 여태껏 이처럼 배우들의 앙상블이 꽃핀 한국 영화가 있었던가.
김태용 감독은 현장에서 누군가 입지가 굳지 못한 자신을 무시하면, 그 사람을 모니터 앞으로 불러서 하나하나 얘기해준단다. 이 장면은 이러이러하기때문에 내가 맞는 것 같다고. 이 정도는 되어야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이처럼 따스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단지 그 속의 사람들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


슬리더 slither, 제임스 건

 단연 올해 최고의 호러물. 카펜터는 어찌됐냐고? 그 호러와 이 호러는 좀 다르다. 카펜터의 것이 정통 무술의 도를 따르고 있다면 이것은 여기저기 유파가 한데 모여 만들어낸 이종격투기의 진수다.

 이 뭐라 정의하기 힘든 장르의 영화는 모든 호러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덩이로 시작해 언뜻 크리쳐물인듯 하다 어느 순간 찐득찐득 촉수와 핏물 만땅 고어물로 나가는 듯 하더니 느닷없이 좀비의 문법을 덧씌우고, 괴수영화를 연상케 하는 절정을 한바탕 폭발과 함께 정리한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되지? 이렇게만 말하면 이 영화가 무규칙 난장판의 노브레인 호러물인것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저 유명한 트로마 사단 출신이라는, 시체들의 새벽 리메이크판 각본을 쓰기도 했던 제임스 건이 만든 이 영화는, 호러 영화의 모든 문법에 정통한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탄탄한 판 위에 단순한 호러영화 이상의 것을 덧씌운다. 마을에 퍼져나간 유충들에 감염된 이들은 모두 한가지 정신을 공유하게 되고, 그들이 모두 한 남자의 사념체가 되어 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를 때 이 영화는 멜로물이 된다. 진정, 이 징글징글한 영화는 그 어떤 예술영화보다 신선한 방식으로 사람 사이의 소통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 여태껏 호러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경지를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제임스 건이란 감독, 보통이 아니다. 로메로 이후 굳어져버린 좀비란 메타포를 이토록 창의적으로 써먹은 인간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떠나, 이 영화는 일단 즐겁다. 여기엔 장르를 충분히 알고 변용할 줄 아는 이의 즐거움이 담겨져 있다. 기존 호러 명작들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은 물론이고. 나날이 발전해가는 cg와 특수분장은 이제껏 왠만한 호러영화에선 보지 못했던 확실한 고어씬으로 우리를 반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호러 영화의 생명은 극단적인 창의력인데, 이 방면에서 이 영화는 확실한 일가견이 있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권하지만, 그래도 식사중인 당신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 당신이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 

 프레스티지 the prestige, 크리스토퍼 놀란

 다들 실망이라고 했다. 기대했던 것 이하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감독의, 메멘토란 새로운 스릴러로 시작해 알 파치노와의 인썸니아를 거쳐, 작년엔 드디어 배트맨 비긴즈라는 역작을 일궈낸 행보에 비할 때 본작의 조금은 김빠진 반전은 분명 약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나날이 그 날개를 펼쳐가고 있는 놀란에게, 이미 전작의 든든한 배역진 그대로 확고한 차기작 다크 나이츠가 예정되어 있는 이 감독에게, 그 사이에 끼어있는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놀란이 한번 쉬어가겠다 마술이란 소재에 빗대 지른, 영화를 만든다는 일과 그를 경청하는 관객들 사이의 어떤 관계를 말하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이런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잘 보고 있습니까? 이거야말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정말로 잘 보고 있습니까? 영화는 19세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이제 막 지난 시대의 유물들이 과학과 충돌하기 시작하는 때의 마술사들을 다룬다. 놀란쯤 되면 이 교묘한 마술의 세계를 그려내는데 모션 컨트롤 카메라니 하는 장치들을 활용해서 스크린 위에 정말 마법같은 광경들을 그려낼 법 하건만, 그는 그러한 광경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투박한 수공업품들과 대역 등 갖은 수단들을 동원하는 무대 뒤 마술사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들은 마법사sorcerer가 아닌 마술사magician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본질이란 곧, 스크린 위에서는 초자연적인 마법을 보여주는 듯 싶지만 사실은 카메라 뒤에서 갖은 잔재주로 마술을 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이란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분투하며 스스로의 모든 재능을 쥐어짜내는 마술사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힘으로 요술을 부리는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슬라에게서(지기 스타더스트, 데이빗 보위!!)정말 초자연적인 마법을 얻어낸 듯한 휴 잭맨이 결말에서 죽어버리는 건 그저 우연일까. 그들의 쇼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은 마법처럼 보이는-영화란 마술에 홀린 관객들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듯-사람들은 결국 마술의 비밀을 알 수 없다. 아니, 알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속고 싶어하기 때문이다-관객들은 결국 자신들이 보는 것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난 이가 실망하듯, 이 영화의 결말이 허무한 것은 우리 관객들이 무대 뒤의, 스크린 뒤의 모습들을 봐버린 데서 오는 허탈감이다. 화려하게 데뷔한 후 한때 나름의 부진도 겪었다, 이제 막 최고의 자리를 거머쥔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에서 이런 것들을 읽는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갖가지 딜레마에 둘러싸인 영화 속 두 마술사들의 모습은 꼭 영화감독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이 영화를 위해 다른 변명을 하자면 우선 이 영화는 화려한 배역진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가히 제2의 전성기라 할 마이클 케인, 우리의 영원한 골룸, 반가운 얼굴 앤디 서키스, 거기에 스칼렛 요한슨과 휴 잭맨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크리스찬 베일이다. 일찍이 머시니스트와 같은 작품에서 놀라운 연기혼을 불태웠다만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던 태양의 제국 꼬마는, 암흑의 기사로 다시 태어나며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 듯 하다. 물론 배역의 성격 탓도 있다만 시종일관 휴 잭맨을 압도하며 이기죽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마저 떠올렸다. 거기에 데뷔 이후 놀란과 쭉 함께해온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가 시대극답지 않게 역동적인 핸드헬드로 잡아낸 화면은 이 세계에 살아 숨쉬는 거친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또 한가지 놀랐던 점이 있다면, 그 정신없이 꼬여드는 편집이다. 이제 현대 관객들은 이런 식으로 붙여놓은 플롯도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왔구나. 란 느낌이랄까. 영상 위로 도착하는 기차를 보며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던 영화 관객들은 놀란과 이냐리투 등등 영화 편집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작가들을 통해 이제는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섞이는 편집에도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내 나름대로 좋은 얘기만 하려고 했나? 이 영화는 어찌되었건 여러 갈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긴 하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히어로인 배트맨을 되살린, 그리고 그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감독에게, 올해의 이 영화는 미워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유레루 ゆれる, 니시카와 미와

 왜 진작 보지 못했을까. 12월 말, 나다에 앉아 이 영화와 뒤늦게 만나던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오다기리 조란 꽃미남이 나온다는 데 대한 반발심리였을까(미남이 나오는 영화따윈 보지 않겠어!!). 이 영화를 보고 온 누님이 추천을 아끼지 않음에도 나는 이 영화를 멀리했다. 그리고 씨네 21에 실린, 봉준호와 이 영화의 감독, 니시카와 미와의 대화록을 보고 나는 그 결정을 후회했다. 그리고 이제와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 온 나는 이제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 중 한편에 추가시키기를 거부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얼마나 될까? 보통 감독이었다면 정말로 여주인공을 강 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데만 온 신경을 쓸 것이다. 여성 감독다운 디테일한 묘사들을 무기삼아 (그래서 봉테일 감독이 더 좋아했던 걸까?), 영화는 정말 별것 안 보여주면서도 어느새 모든 관계들을 척척 설정해놓고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동생과 아버지의 언쟁을 말리며 흩어진 상을 황급히 치우는 형의 다리 위에 똑똑 떨어지는 술방울들. 그런 소소한 장치들은 소리없이 쌓여 플롯 내에서 보여주지 못한 가족의 과거사와 형제 사이의 갈등을 깔끔하게 설정해나간다. 이건 너무 깔끔해서 내가 언제 저 사실을 깨달았지? 라고 놀랄 정도. 영화는 흔들리는 다리 위 두 사람의 상황을 처음부터 팍 보여주는 대신, 흔들리는 숲의 풍광과 흐르는 강물의 사운드를 가득 비춘다. 제목 그대로, 그 한순간에 모든 것을 흔들어버린다. 나는 사실 여자가 실족하고 그 사실을 신고한 형제가 돌아와 저녁밥을 먹다 아버지와 싸우는,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이 정도까지만 하고 끝내도 완벽한 단편이 될거라 생각했다. 거기엔 초반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그 모든 관계들을 더할 나위 없이 설명해버린 힘이 있다. 그렇기에 중후반의 법정씬은 조금 반복되는 감이 있었다. 이미 등장인물들 사이 갈등하고 자시고 할 이유들이 다 보이는데 더 얘기해서 뭐해. 하지만 감독은 그대로 단절되는 관계를 얘기하기보단, 언제나 빼앗기만 하던 쪽이었던 동생이,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며 출소한 형을 부르는 결말을 맺는다. 둘 사이엔 그때 그 강물처럼 시끄러운 차들의 벽이 놓여있지만 이제 그들에게 그것쯤은 상관 없을것 같다. 흔들리는 다리 위를 건너는 두 형제처럼, 조용히 흔들리는 엔딩 테마가 인상적인, 너무 늦게 만난 수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故 로버트 알트만

 어이하여 벌써 가십니까. 당신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난다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즐거워하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떠나가 버리시더군요. 저는 당신 영화의 정수라 할 만한 것에 겨우 다가간지 얼마 되지 못했건만.

 당신의 영화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일학년 시절, 내리의 어두침침한 자취방에서였습니다. 어디선가 명성만 듣던 플레이어의 비디오를 데크에 걸고 소문의 오프닝 롱테이크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졸고 깨기를 반복하다 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란 기분으로 넌더리를 내며 데크에서 비디오를 빼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작년 가을의 필름포럼이었죠. 역시나 영화사에 거대한 자취로 기록된, 내쉬빌을 세시간 가까이 버텨냈건만 역시 제게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 후의 고스포드 파크도 마찬가지였지요. 아직 진정 위대한 영화들과, 그런 영화들이 말하는 방식과 충분히 만나지 못한 저에게는, 당신의 그 별 사건 없이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이야기는 단지 밋밋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나 했건만, 로버트 알트만이란 이름이 영화사에 남긴 그림자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저는 그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챈들러를, 진정한 하드보일드와 필름누아르의 원류를 만난 후 당신의 롱 굿바이를 만났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을,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풀려나며 흐르는 삶의 모습들을 만난 후 당신의 숏컷과 만났습니다. 당신은 할리우드에 존재해오던 모든 장르의 인습들을 해체해버리고, 당신만의 스타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를 그려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제가 사랑하는 장르 영화들의 본색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며, 제 인생의 커다란 충격이었던 매그놀리아와 같은 영화 또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작이 종로에 걸렸습니다. 하루 두번쯤 상영하나 싶더니 조금 지나자 하루 단 한번, 오전 상영. 휴학생의 폐인에 가까운 생활 패턴으로는 조금 힘든 일이었습니다만, 당신의 신작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여러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는 당신의 스타일은 여전했지만, 언제나 당신의 작품을 지배하던 냉소 대신 따스한 시선이 담긴 당신의 세계는 좀 의외의 것이었거든요. 지금 와서 얘기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라디오 쇼의 마지막 순간들을, 언제나처럼 당신의 영화를 위해 모여준 남녀노소 재능있는 배우들의 모습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그 시선이, 당신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장송가였다면 뒤늦은 끼워맞추기일려나요. 누군가는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은 당신이 만든 기라성 같은 걸작들이 아닌, 바로 이 작품이 될거라고 했습니다. 심술궂은 표정으로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따위는 보지 않는다고 말하던, 너무 늦게 안 것이 아쉬울 뿐인 거장. 안녕히, 알트만 영감님



 

 그 외에도 한해 동안, 조금의 처참한 졸작들과 그보다 많은 수의 평작들과 다수의 아쉬운 범작들, 그리고 몇 편의 수작들과 거기에 눈부신 걸작들이 몇편이나 더 있었다만, 아쉬운 대로 그 리스트는 기억 속에 남겨 두리라. 그 모든 영화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불러내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기억 밑바닥에 조금씩 쌓여 가다가, 어느날 어느 순간엔가 또 다른 깨달음의 순간에 찾아오리라.

 2007년에는 올 한해보다 더욱 많은 졸작들을, 그보다 더욱 더 많은 그저 그런 작품들을 만나길 기대한다. 그런 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영화 보는 눈을 번쩍 트이게 할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또 즐거운 영화들이 펼쳐지길. 안녕, 2006년.

 

2006, 마지막 날
by widea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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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awake | 2006/12/31 22:42 | cinema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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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abBatH at 2007/01/01 10:48

제목 : 목록 : 2006년 영화 Best 10
 올 한 해 동안 325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정확하진 않습니다. 볼 때마다 정리를 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결산하다보니 빠진 영화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 처음 본 영화는 199편이고, 그 199편을 다시 분류하면 일반 극장 개봉작이 23편, 작은 영화관들의 상영회를 통해 본 것이 48편, 그리고 TV/VHS/DVD로 본 것이 128편입니다. 원래는 이 세 부문 별로 각각 열 편 씩의 영화를 꼽아 올 한 해의 영화를 되돌아보고자 했습니다만......more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1/01 11:49
[폭력의 역사],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것 같으니까 크로넨버그 감독님께 천배 사죄 하시면서 극장에 가셔야겠습니다 ^^

그나저나 정말 어이없이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DVD를 구입해서 봤는데, 볼 때마다 감격, 경악합니다. 특히 말씀하신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가 없어요. 영화 다 보고 DVD 서플먼트를 뒤적이다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각본가 조쉬 올슨이 [폭력의 역사] 각본을 쓰면서 맨 마지막 장에는 딱 한 문장만 적었다고 합니다. "There's hope." 그 자신도 그렇게 쓰고 나서 '과연 이 마지막 장을 찍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마이애미 바이스]도 참 흥미진진하게 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딱 보기만 해도 멋있는 장면들 말고 마이애미의 볼 것 없는 밤에 무장하고 작전에 나서는 경찰들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품고 있었던 CNN 뉴스 같은 질감이 기억나네요. 정말 HD 카메라만이 가능했던 화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 없어도 말하는 이미지라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을 하는데, 특히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말씀하시니 제가 Best 10으로 꼽은 [40인의 총잡이]가 떠오르네요. 그 영화도 두 사람이 문득 사랑에 빠지는데 그게 이미지로는 가능했거든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는 그게 뭐였을까… 섹스 중에 흘리던 공리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극장에서 그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졌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 설명은 불가능하네요. (정성일 평론가가 그 눈물 한 방울 가지고 엄청 긴 글을 썼던데, 것도 나름 흥미진진하고 동의할만한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03 23:33
sabbath/으아니 폭력의 역사가 정말 개봉한단 말입니까!! 이거야 원, 천배 만배 사죄하면서 극장으로 달려가야겠군요. 사실 그렇게 보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으론 그래 이 영화가 개봉해서 수익을 올린다는 건 복수는 나의 것이 재개봉해서 천만관객을 모으는 것보다 힘들거야 등등의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로 개봉한다니 놀라울 뿐이군요. 제발 디비디도 국내판으로 내주었으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정말 영화다운 '영화'들은 스토리나 대사가 아닌 이미지로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40인의 총잡이는 아직 못봤습니다만 사무엘 풀러라니 보지 않고도 뭔가 감이 오는 듯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마이애미 바이스에서의 공리의 눈물 같은 거죠. 맥락을 설명하는 전후 스토리도 대사도 없지만 그 무지막지한 이미지 위로 뭔가 내러티브가 만들어진다...는 건 너무 제 주관일려나요. 정성일 평론가의 그 글도 언제나 그렇듯 좀 너무 멀리 나간다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를 다룬 글 중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트랙백이란 건 정확히 어떤 건가요? 이글루 시작한지 꽤 됐건만, 글 축약하는 것도 그렇고, 도움말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는 것 투성이라서. 컴맹은 슬플 뿐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1/04 09:31
트랙백은 상대방 글과 연결이 됨직한 자기 글이 있을 경우에 상대방에게 '제 글 중에 이런 것도 있답니다~'하고 자랑하는(…) 기능인데요, 글쓰기 모드에서 보시면 글쓰기 창 아래쪽에 "글 보내기"라는 부분이 바로 트랙백 기능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밸리 주제"의 경우는 이글루스 밸리에 글을 올리는 거고, 그 위에 "주소 입력"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다른 사람의 글에 자기 글을 보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wideawake 님의 이 글 아래에 보시면 트랙백 주소라는 게 보이실 텐데요, 제가 만약 제 글의 "글 보내기" 창에 저 주소를 넣고 글을 쓰면/수정하면 지금처럼 wideawake 님의 글 아래에 제 글이 보이게 되는 거랍니다. 물론 받는 사람 쪽에서는 그 트랙백이 마음에 안 들면 삭제할 수 있고요. (그러나 어쨌든 시작은 보내는 사람 쪽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잘 안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트랙백을 보내게 되면 민폐가 될 가능성도 있는 기능인 듯…)

글 축약은, 제 생각에는 글쓰기 창 위에 있는 "more" 기능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거기에 체크하시면 글쓰기 창이 두 개로 분할되는데, 위쪽 글쓰기 창에 쓴 글은 글을 다 쓰고 올렸을 때 기본적으로 보이는 부분, 그리고 아래쪽 창에 쓴 글은 "more"를 눌러야 펼쳐지면서 더 보이는 부분입니다. 직접 해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04 15:15
sabbath/설명 감사드립니다! 정말 한번 해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군요;; 덕분에 옛날에 써놓은 글들에 more를 걸어대면서 컴맹도 할 수 있다!! 는 기분으로 놀고 있습니다. 이거야 원, 정말 컴맹도 할 수 있군요!! 희망찬 2007년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1/05 03:01
잘 읽었습니다. 2006년 제가 꼽은 다섯편의 영화중 무려 세 편이 이 리스트에도 포함되어 있네요. : [폭력의 역사], [슬리더], [가족의 탄생]

그 중에서 특히 반가운건 [슬리더]네요, 감격입니다. 이 놈을 선정할 사람은 흔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뭐 노골적으로 좀비, SF괴수, 신체강탈자 등의 각종 특성을 버무린 후, [소사이어티] 수준의 신체변형까지 보여주는 작품이죠. 무척 재미있기도 하구요. 이런 류의 잡탕물은 기존에도 있었는데, 특히 [슬리더]는 [나이트크리프스]와 정말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 감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7/01/06 09:53
잘 봤습니다. 슬프게도 <명성(The Prestige)> 외에는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이군요 ㅠㅠ <마이애미 바이스>와 <가족의 탄생>을 꼭 봤어야 했는데.

<명성>을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신 게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전 보면서 생각도 못했던 것이라(느끼긴 했을 수도. "Are you watching closely?"를 그렇게도 강조해서 말하잖아요)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습니다. 저는 잘해봐야 영화를 사랑하는 두 번째 방법까지 밖에는 시도할 수 없는 놈이라 스크린 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명성>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돌려보면서 이게 마술판이 아니라 영화판이라면? 이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네요. 최근에 <비열한 거리(2006)>를 봐서 더욱 그러는가 봅니다.

참, 저번에 강력히 추천해드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보셨는지, 보셨다면 '여러 번'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전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06 14:12
ArborDay/폭력의 역사는 많은 분들이 2006년의 걸작으로 꼽고 계시더군요. 재작년이었나 깐느 영화제에서 크로넨버그의 신작이 걸렸는데 작살 난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얼마나 두근두근했던지. 비록 컴퓨터 모니터로 보긴 했지만 한컷한컷 풍겨오는 포스의 압박이 느껴지더군요. sabbath님 정보에 의하면 2월달쯤에 개봉(!!)한다니 크로넨버그 형님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향해야겠습니다.

슬리더 역시도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듣고 (부끄러운 얘깁니다만) 어둠의 경로로 구해서 봤는데, 보는 내내 대체 이건 뭐지? 란 기분이 들더군요. 중반쯤엔가 그 두 동강 내장 주르륵, 도 그렇고, '좀비'가 된 사람들의 입에서 의외로 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야 호러물의 역사를 읊을 정도는 아니지만 장르의 관습들을 가져다가 제대로 재탄생시키는 솜씨에 상당한 내공이 엿보이더군요. 가장 호러다운 호러에서 호러 이상의 것을 끌어낸달까요. 아니나다를까 감독 제임스 건이 저 악명 높은 트로마 사단 출신이더군요. 시체들의 새벽 리메이크 버전 각본에다가. 추천해주신 나이트크리프스도 꼭 봐야겠습니다.

파인로/마이애미 바이스를 극장에서 놓치다니 참 서글픈 일입니다. 이 영화의 2.4:1쯤 되는 압도적인 씨네마스코프를 보면서 이거이 영화의 힘이구나! 라고 황홀해했던 저로서는 참 민족의 슬픔이라고밖에. 마이클 만이라면 언젠가 어디선가 회고전 한번쯤은 해주지 않을까요?

프레스티지(전 이편의 어감이 맘에 들어서;)에 대한 해석은, 뭐 제 멋대로 해버린 거죠. 마이애미 바이스때도 그랬지만 영화가 끝나고 감동에 차서 앉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가서면서 무슨 영화가 이따위야 식의 말들을 던지고 가는 통에 악이 받혔달까요. 물론 두편 다 비판받을 여지도 있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장해버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해석은 그런 애정에 대한 표출이랄까요.

켄 로치에 대한 추천은 잊지 않고 있어요. 나다에서 막날 막상영에 보려고 아껴두고 있는데, 한번밖에 못 본 걸 후회하고 계신다니 낭패;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1/07 19:24
아니, 두 가지 정보를 섞어서 기억하고 계시네요^^;; 2월달 쯤에 보실 수 있는 건 한국영상자료원-호러타임즈 주최로 여는 금요일 밤의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에 선정된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이고요(8주 동안 한 주에 한 편씩이기 때문에 2월일수도 있고 3월일수도 있습니다), [폭력의 역사]는 아직 2007년 '상반기'로만 정해진 상태랍니다. (수입사가 미로비전이니까 광화문 미로 스페이스에서 상영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습니다만 꼭 거기서만 상영한다는 이야기도 없고요)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09 22:40
sabbath/이런, 그랬군요. 정보 왜곡에 일단 사과드리는 바;
알드리치의 그 영화는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전설에 가까운 평을 많이 들어서. 영상자료원은 한번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못가보고 있는데, 그때 꼭 가야겠습니다. 폭력의 역사는 언제라도 좋으니 제발 3월만 피해서 개봉해주면 좋을 텐데요(그때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주 정도 어딘가로 떠나있을 예정이라서;)
Commented at 2007/08/21 02: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10/25 16:02
비공개/ 형 LCD부터 고치세욧!!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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