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지난 여름이었다. 경희대 앞 좁디좁은 여관방에다 어찌어찌 세팅을 마친 촬영부는 옆방에서 대기중이었다. 장마철 눅눅함이 묻어나는 좁아터진 방 안 터져나올듯한 기재들 사이에서, 어찌어찌 '인생의 밴드' 얘기가 나왔다. 영빈이형은 유투를 언급했고 은형누님은 오아시스를 말했던 것 같다. 순간 나는 엄청난-에이스탠드와 암백 사이에 낑겨 빠져들기에는 너무나-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사그러들고 다른 대화가 시발될 막 그 시점에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핑크 플로이드요' 라고 대답했었다. 완벽하게 타이밍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내 인생의 밴드가 핑크팬더인지 펑크플로이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분명 핑크 플로이드를 이야기했다.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학교 앞에서 횡단보도 서너개만 건너면 그 동네 최고의 번화가 노원역이 나왔고, 그 앞에 이름부터 과연 노원구다운 조그만 음반가게, 노원 레코드가 있었다. 그곳에서 그때까지 이름만 들어왔던-에릭 클랩튼이니 비틀즈니 하는 형님들의 베스트 음반들을 사모으던 때였다.

 그리고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알란 파커의 더 월이 십여년만에야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들어오던 때가. 티비에선 80년대에 쌓아올려진 벽이 이제야 무너져내림을 성토하며 저 유명한, 가면 쓴 학생들이 학교란 공장에서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영상을 줄창 틀어주었다. 그리고 보면 패컬티 오에스티였던가, 레인 스텔리가 톰 모렐로의 기타에 맞춰 음울하게 불러제끼던 어나더 브릭 인 더 월이 엠티비를 타고 있던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모두, 벽 속의 또다른 벽돌들일 뿐이야. 귓속에 깔려들던 그 음울함에 못이긴 나는, 노원 레코드 한켠에 놓여진, 몇 달치 용돈은 족히 될 가격의 더 월을 무작정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두 장의 디스크는, 노원레코드의 팝 섹션만큼이나 좁아터졌던, 한 중학생의 세상을 둘러싼 벽들을 일순에 깨뜨려놓았다.    

 시간은 다시 흐르고 흘러, 재작년 동아리 합숙의 막판 엠티. 펜션 한켠 방구석에 널부러져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바다에 안경을 빠뜨린 덕에 가물가물한 눈으로 보기에도 규모가 장난이 아닌 공연이, 지상파로 방영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란 생각이 든 순간, 예전에 주워들었던 라이브 에잇 공연 소식이 문득 스쳐갔다. 세계 평화를 위해 전세계 뮤지션들이 하나가 되는,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가 하나가 되는 공연. 그리고 나는 좋지 못한 시력보다 더 흐려진 눈으로, 전설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그 후에. 라이브 에잇 디비디가 출시되었다. 중학교 시절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예약했다. 오로지, 핑크 플로이드를 위하여. 그리고 이제는 백발의 로저 워터스와 주름이 가득한 데이빗 길모어가 한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다. 24년만의 리유니온이었다. 그닥 좋지 않게 헤어진 이들이었지만, 그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들은 또 한번 벽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오래 전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바로 그 핑크 플로이드였다. 전 세계의 청중들을 어느새 편안하게 마비시키며, 그 위대한 솔로잉이 무대 위에 이어지고 있었다.


                       2006.01
by wideawake

 

by wideawake | 2007/01/06 12:39 | musica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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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크 플로이드에 관해서 써야 한다. 이 공간에 써내린 글줄들 중에 그나마 스스로 맘에 드는 몇 개인가를 꼽으라면, 핑크 플로이드를 얘기했던 글이 꼭 들어갈 거다. 나름의 깜냥으로나마 어떤 대상에 대해 묘사해보려 애쓰고, 어떻게든지 오롯한 본 모습을 글귀로나마 잡아보고 싶어지는 ... more

Commented by 탱탱볼볼 at 2007/01/09 22:19
핑크플로이드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멋진 공연 구성으로도 유명하죠 ㅠ.ㅠ
Commented by PaleSara at 2007/01/09 22:24
무대에서나마 재결합했으면 충분합니다. 합주하는 순간만이라도 하나가 되었을테니까요.

로저 워터스 홀로 왔을때도 참 좋았는데 다시 순회공연 할 생각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온다면 기꺼이 볼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Zikk at 2007/01/09 22:29
기분 좋아지는 글 이네요.^^ 1998년인가 1999년 즈음, 더 월의 비디오 출시는 이미 되었었지만 극장 개봉은 그때가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봉관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압구정 근처였던 것 같은데 아... 극장 안에는 사람들이 20명 남짓 않아있었습니다. 청소부가 핑크의 방문을 두드리다가 In The Flesh 가 터져나오는 그 때의 소름돋던 감흥이 아직도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영화관 나오며 받았던 The Wall 오리지널 포스터는 아직까지도 제 방 벽 한구석에 붙어있답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09 22:49
역시, 세상엔 핑크 플로이드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반갑습니다

탱탱볼볼/작년에 DVD로 나온 펄스 실황은 구입하셨는지. 그걸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답니다.

PaleSara/아마 live8만을 위한, 유일한 단 한번의 예외라고 했을 겁니다. 해체 전후해서 멤버들 사이가 처참하게 안좋았으니... 노인네들 화해좀 하지. 통신상에서 유일한 희망은 한반도 통일 the wall특별공연이란 반 우스개소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 되면 좋겠습니다.
로저 워터스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요, 돈도 없고 야자도 있고 해서-정말 갈려고 맘먹었다면 갈 수 있었을텐데도-안가 놓고는 그날 밤새 통탄했습니다. 로저 워터스만이라도 다시 와줬으면

Zikk/더 월과 처음 만난지 수년이 흘렀지만 항상 인 더 플래시가 폭발할 때는 정말이지 핏속에 전류같은 것이 흘러가는 걸 느낍니다. 한창 피끓던 시절에 뇌리에 각인되서 그런가, 앞으로 평생 그런 곡은 못 만나볼 것 같아요.
더 월을 극장에서 보셨다니 정말 부러울 뿐입니다. 저는 15주년 기념반인가요. 특별판 DVD에 접혀 들어있던 조그만 포스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주년 기념 재개봉 사태...같은 건 아마 안 일어나겠죠? -_-;
Commented by 북극찐빵 at 2007/01/09 23:37
음반으로는 물론이고 Pulse에, London 1966-1967에, Making of the Dark Side of the Moon 에, Reflections & Echoes에, 참 어느 영화감독 못지 않게 요근래까지 DVD구입에도 등골을 뽑아주신^^; 밴드라서.... 포스트 읽으면서 저까지 덩달아 뭉클했습니다^^
참 신기한 게....어떤 아티스트들은 그냥 가수나 연예인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사와 추억에 스며들고 어우러져서 함께 자라고 함께 나이먹어가는 '우상 겸 친구'가 되는 느낌이에요.(그런 점에서, PF를 초기부터 봐오고 들어온 올드팬들 많이 부럽습니다;;)
사실 저 영감님들이 이제와 사이가 마구 좋아질 가능성도 희미해보이고-_-;;, 우리나라가 조만간 드라마틱하게 통일이 되더라도 핑크 플로이드란 이름으로 The Wall 라이브때라든가 Delicate Sound 투어 수준의 라이브를 선사하러 와줄리야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요즘 날고 기는 어느 팀보다도 라이브 한번 꼭 보고싶은 밴드이기도 합니다.
올해 David Gilmour의 솔로음반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1/15 02:43
북극찐빵/이번에 나온 펄스 정말 작살이죠 ㅠ_ㅠ 더 월이 발매된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올드팬을 자처하기는 좀 그렇고, 저는 더 월로 시작했으되 펄스 라이브로 핑크 플로이드에 정말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 shine on your crazy diamond의 기타 전주를 들을 때의 그 기분이라니. 생각해 보면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을 처음 들은 것도 펄스의 두번째 디스크였던 것 같네요. 그것도 그거지만 더 월에서는 짤라먹혔던 comfortably numb 마지막의 기타 솔로도 그렇고. 이번 디비디에서 빽라이트 하나 팍 받은채로 길모어 영감님이 그 솔로를 후려주시는데...하아, 시대가 틀려서 몇발 늦기는 했다만 확실히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자라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이거야 원 인생사에 스며들지 않고서야. 정말 라이브 한 번 보고 죽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번 솔로음반은 글쎄요, 후기 핑크 플로이드스러운 인상인데 듣고 있자면 어느샌가 흘러가버린달까요. 확실히 데이빗 길모어스럽긴 한데 뭔가 인상이 희미한 느낌이에요. 그 희한한 시디 고정 방식의 자켓은 정말 강렬했는데.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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