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로사와 아키라는 언제나 그의 영화에서, 거대한 비극 속을 번뇌로 헤매이는 인간의 작디작은 모습을 그려내기를 즐겨했다. 그가 흠모했던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그의 걸작 '란'이 '리어 왕'의 구로사와식 리메이크였듯, 본 영화 '거미집의 성' 역시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각색한 것이다. 생전에 오손 웰즈를 두고 '셰익스피어를 사랑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자신의 라이벌이라 이야기하곤 했다던, 동방 또 다른 세계의, 셰익스피어도 자랑스러워 할 후학 중의 후학. 셰익스피어란 불멸의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생명력이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것이어서, 펜 대신에 이제는 카메라를 든 수많은 후학들 또한 영상 위에 그 마력을 옮기려 시도했다. '멕베스'의 경우라면 잘 알려진 또 하나의 버전, 폴란스키의 '멕베스'가 있겠다. 중세의 어두침침한 비릿함 위에 스스로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다 파국을 맞는 폴란스키식의 멕베스도 좋다만, 셰익스피어적인 주제를 동양적 형식미 안에 그려낸 구로사와의 버전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지닌 힘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으리라. 일단 이 영화를 보고 서양 친구들이 느꼈을 충격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단순히 그네들의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만한 동경을 떠나서도 이 영화가 지닌 힘은 자체로 강렬한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주인공 와시주의 흥망성쇠를 바탕삼아 원전 '멕베스'를 재구성한다. 무사 와시주는 주군의 성으로 향하는 길에 거미집의 숲에서 숲의 혼령을 만나고, 자신이 주군을 대신해 성의 주인이 될 것이란 예언을 받는다. 함께 예언을 받은 동료 장군 미키와 욕망에 눈이 먼 아내 아사지의 부추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에 못이긴 와시주는 적의 짓인양 위장하여 주군을 암살하기에 이르고, 미키의 아들이 주군이 된다는 예언 탓에 미키마저 죽이게 된다. 허나 그의 부귀 영화는 너무나 짧고, 자책과 불안에 시달리던 그는 거미집의 숲이 움직이는 날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해본 적 없는' 자신이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결국 움직일 리 없다고 믿던 거미집의 숲은 움직이고, 그는 스스로를 옭아매오는 욕망과 함께 자신의 부하들의 화살에 맞아 파멸을 맞이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야망과 배신, 상승과 몰락에 이르는 인간이 지닌 모든 종류의 욕망이 들끓어대는 이 세계를 일본적인 배경 안에 풀어낸다. 그 또 다른 세계 안에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다시금, 또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중세 스코틀랜드에서나, 중세 일본에서나 다 같은, 스스로의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한갓 유한한 인간의 흔적이라곤 간 데 없는 옛 성터, 안개에 덮인 거미집의 숲, 끝없이 늘어선 기치와 창검들, 전국시대 일본 건축물의 실내 모습들. 빽빽하게 늘어선 숲 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혼령의 말에 솔깃하는, 또는 텅 빈 실내에서 풀숏으로 더욱 공허해 보이기만 한 인간들. 미키를 암살한 후 연회 자리에서 와시주는 미키의 혼령에 혼비백산하여 방 안에 이리저리 몰리고, 카메라는 넓은 방 안에서, 벽 사이에서 작아만 보이는 그의 모습을 따라간다. 이것은 결국 공허 그 자체, 파멸로 귀결되고 말 이야기. 스스로의 욕망이 끝을 맞이하는 풍경, 안개 속에서 천천히 거미집의 숲이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한 후 급기야 몰락해버린 와시주는 -그 자신의 장기였던- 화살에 맞아 죽지만, 구로사와는 극을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움직이는 숲의 실체는 반군의 위장술이였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은 예언 따위가 아닌, 와시주 자신이 자초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일인 것이다. 숙명이란 거대한 거미집 안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욕망. 마지막엔 그 흔적조차 희미한 채 옛 성터의 흔적 너머로 사라지고 말 운명임에도. ![]() 덧 : 이 감상기를 쓰는 도중, 안개덮인 성터 위로 웅장한 합창과 현이 어우러지는 라스트신을 떠올리며 문득 이 영화의 덧 2 : 뒤늦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조그만 브라운관으로 볼 때마다 서울 아트시네마의 2004년 '구로사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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