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告함] 스콜세지 형님께 오스카를 許하라!!
 얼마 전 몇몇 친구놈들과 지하철을 타고 가다, 가판대에서 사든 필름 2.0을 뒤적이고 있는 한 녀석의 손에 문득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짧은 백발에 새카만 눈썹, 너무도 흠모해마지않는 바로 그 분의,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 지면 한바닥 가득 채워져있는 모습. 아니 대체 이 심란한 표정은 뭐야, '감독조합상은 받았지만...' 혹은 '시상식을 앞둔 영화감독의 불안' 인가?

 드디어, 할리우드 최고의 축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 삐까번쩍 스타들이 플래시빨 잔뜩 받으며 레드카펫 즈려밟는 꼴들을 굳이 챙겨볼 것까지야 있나, 시상식이라는 건 결과만 보면 되지-란 생각이었다만, 이번 아카데미만큼은 날짜까지 세가며 기다리고 있다. 바로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가 다섯 개 부문에 올라있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감독상을 포함해서.

 믿을 수 없게도, 아카데미는 이 거장에게 30여년간 단 한번의 감독상도 수여하지 않았다. 가히 영화계의 미스테리라고 불러도 될 만한, 몇십년쯤 더 흐른 후 사람들에게 얘기해주면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하란 답을 들을 법한 이야기다. 이번에야말로, 라고 별렀던 2005년의 '에비에이터'는 노장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란 걸작을 이기지 못했고, '갱스 오브 뉴욕', '좋은 친구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 그가 만들어낸 세기의 걸작 중 걸작 '성난 황소' 마저 레드포드의 감독 데뷔작 '보통 사람들'에게 영예를 내주어야 했다. 어제 후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이런 농담을 했다. '스콜세지도 그땐 진짜 식겁했을 거야. 아니, 성난 황소 같은 걸 들고가도 안 되면 대체 영화를 어떻게 찍어서 갖고 가야 된다는 거야?'

 물론 세상에 상이란 게 다는 아니기는 하다. 그는 오스카상 따위 없어도 충분히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감독이다만, 그럼에도 헐리우드란 전쟁터에서 평생토록 영화라는 묵직한 군장을 짊어지고 치열하게 싸워왔던, 이 자그마한 체구를 한 무관의 제왕에게, 아카데미란 영화인의 축제가 한번쯤은 격려를 안겨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디파티드'는 끝간데 모르고 무시무시해져만 가는 이스트우드와 맞붙기엔 약간 실망스러웠다만, 마티는 너무 오래 기다렸고 아카데미는 여태껏 실수를 충분히 많이 해오지 않았는가. 2007년 2월 25일, 바로 내일. 마틴 스콜세지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아들고 30년간 아껴왔을 소감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길 기대해본다. 예의 그 특유의, 정신없이 빠른 말투로. 저 심란한 표정을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바꾼 채.

 또 하나의 아카데미 최고의 실수 중 실수,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수백 곡조의 주옥같은 선율들과 셀 수 없는 영화의 명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로 그 영화음악가, 믿을 수 없게도 엔니오 모리꼬네 역시 아카데미에서 단 한번의 상도 받지 못했다. 이거야 원, 스콜세지와 비슷한 맥락으로 말하자면, 대체 45년동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라던가 '더 미션-가브리엘의 오보에' 같은 걸 작곡하고도 음악상을 탈 수 없으면 대체 무슨 음악을 만들어 오란 말인가. 왠지 모르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방구석에서 머리 박박 긁으며 그럼 너네가 만들어봐라 자식들아-를 외치는 두 거장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다행히도 아카데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내일 시상식의 평생공로상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돌아온다고 한다. 실로 다행스런 일이다.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자아,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서 설령 이것과 비스무리한 포스의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해도-아카데미에서 상 한번 탈 수 없단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라고 말하게 되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곧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절망만을 가르치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위의 사진은 이번 공로상 수상을 기념하여 출시된 'we all love ennio morricone' 의 표지다. 실로 한사람 한사람 불가능에 가까운 이름의 음악계 스타들이 각각의 존경심을 담아,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편곡하여 수록한 헌정앨범이다. 저들에게도 역시 엔니오 모리꼬네란 거장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네와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보니 위의 두 사진에 담겨진, 오스카에 배신당해온 두 거장의 근심어린듯한 표정이 언뜻 닮아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아님 말고.


 2007.02. 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에
 by widea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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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awake | 2007/02/24 10:07 | cinema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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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GoodNight at 2007/02/26 19:45

제목 : 스코세지...축하해요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마틴 스코세지 그런 그가 '디파티드'로 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수상자 봉투 내용이 맞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까?” 라는 그의 수상 소감이 더욱 와닿을 정도로 6전 7기끝에 받은 거라 더욱 뜻깊은 수상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축하해요, 마틴 스코세지 ^^...more

Commented by 마른미역 at 2007/02/24 12:53
하핫- 공감합니다. 허하라!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4 16:16
스콜세지 형님께서 "난 이 영화로 상 못 받아."라고 말씀하시고 수상을 거부한 후, 언젠가 주어질 평생공로상까지 "니들이 내게 해준게 뭔데?"라면서 거부하셨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해야하지?
Commented by oIHLo at 2007/02/25 02:03
그런데 솔직히 디파티드로는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디파티드는 다소 과대평가되어있는가 싶습니다. 차라리 앞의 두 작품(뉴욕의 갱들과 비행사)가 훨씬 강렬했는걸요.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2/25 14:56
...헌데 25일이란 말만 듣고 오늘 중계 시작부터 끝까지 다 봐주리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내일이더군요;
시차를 고려 안해서 그랬나;;

마른미역님/이제 진짜로 내일입니다, 허하라!!

ArborDay님/...한편 생각해보면 스콜세지 형님께서 십년만 젊으셨어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이 문득 드네요. 할리우드니 아카데미니 하는 것들 다 됐다 그래!! 하면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때 정도면 정말 그러셨을 법도 한데, 뭐 사실 그 때문에 아카데미 친구들한테 미운털 박혀서 여태까지 외면당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 드시면서 요새는 성질 많이 죽이신 듯한 분위기니, 설마하니 정말 그러진 않겠지요 -_-

oIHLo님/디파티드가 다소 과대평가되어있단 말에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서양 친구들이 무간도를 안 봐서 그런 게 아닐런가 싶어요. 뭐, 원작이 무간도라 해서 단순히 1:1로 비교할 수 있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기대가 너무 컸었던것도 같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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